용과 사무라이의 결투: 중(청)일 전쟁(1894-95)의 군사전략적 평가
전쟁의 승패는 전쟁수행의 결과이며 승패의 불확실성 속에서 수행되는 것이기 때문에전쟁수행이야말로 역사창조의 과정이라 할 것이다. 1894-1895년 중(청)일전쟁**에서의 패전은 중국인들에게 경천동지의 대사건이었다. 중국의 패배는 중국의 역사는 물론동북아시아의 수세기간 계속된 전통적 지역질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 시작되었음을“규정짓는 순간”(defining moment)이었다. 중(청)일전쟁에서 주목해야 할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중국 패배의 비밀, 바꾸어 말하면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을 조사하는 일이라 하겠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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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öffentlicht in: | Kukche chŏngch'i nonch'ong 2005, 45(4), , pp.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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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at: | Artikel |
Sprache: | k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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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Zugang: | Volltex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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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 | 전쟁의 승패는 전쟁수행의 결과이며 승패의 불확실성 속에서 수행되는 것이기 때문에전쟁수행이야말로 역사창조의 과정이라 할 것이다. 1894-1895년 중(청)일전쟁**에서의 패전은 중국인들에게 경천동지의 대사건이었다. 중국의 패배는 중국의 역사는 물론동북아시아의 수세기간 계속된 전통적 지역질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 시작되었음을“규정짓는 순간”(defining moment)이었다. 중(청)일전쟁에서 주목해야 할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중국 패배의 비밀, 바꾸어 말하면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을 조사하는 일이라 하겠다. 중(청)일전쟁시 중국은 근대국가의 국민군대가 아직 수립되지 못한 상태였다. 반면에 일본의 군대는 사실상 유럽의 근대 군사력이었다. 실제전투의 과정에서도 중국은 근대전쟁의 전략적 원칙을 완전히 무시했으며 전투 중에도적을 알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일방적으로 적을 멸시하고 과소평가하는 편견과 오만한자세만 견지했다. 중국의 군사력은 총체적인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전 과정에서 주도권을 일본에 넘겨준 채 클라우제비츠의 소위 공격의 정점(the culminating point)을 단 한번도 형성시키지 못한 채 방어에만 치중하다가 괴멸되었다. 대중국 전쟁을 감행한 일본정부의 정치적 목적이 공식적인 소위“조선의 독립”이 아니라, 숨겨온“조선의 독점적 지배”였다면 중(청)일전쟁은 그러한 목적 달성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왜냐하면 일본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종전 후 조선은 러시아가 조선에서 더 적극적 역할을 하도록 러시아를 포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청)일전쟁은 제국국가로서 일본의 경력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It is conducting war that is the creative process of history because victory and defeat are the result of war, which is conducted with uncertainty. The Chinese defeat of the Sino-Japanese War(1894-1895) was a astonishing event for the Chinese. The Chinese defeat was a “defining moment” from which a new regional order emerged, and the traditional order that was maintained for several centuries in Northeast Asia as well as in Chinese history was collapsed. One of important themes in the study of this war is finding the secret of Chinese defeat. To put it another way, it is noteworthy to analyze the secret of Japanese success in the Sino-Japanese War. When the war occurred, the Japanese army already became a European style modern military forces, whereas China was still on the way of modern nation-state building. China could not fully established the modern army system, and even in the actual battle field, it completely ignored the strategic principles of modern warfare. During the war, China had no try for acknowledging the enemy, rather adhered prejudice and insolence by unilaterally despising and underestimating Japanese people. In spite of its superiority in number, Chinese army was deprived the war initiative to Japan. Giving undue value to defense, in the whole process of war, Chinese army never made the Clauzewitzian “culminating point”, and was finally destroyed. It might, however, be a political failure of Japanese government that carried out war against China, if its actual goal was the “exclusive control” in Korea rather than the “independence of Korea”,an ostensible reason. It is because Korea drew Russia into Korean side and let Russia do a more act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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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4818 2713-6868 |